Leslie & Alan: 환영+무지련 MV (1999) In homage to the time

레슬리가 가수로서도 탑의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많이 알려진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 그는 (그냥 홍콩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다하는 것 같은 영화배우 겸 가수였던 것이 아니라) 80년 홍콩 가요계를 뒤흔들던 전설적인 우상 중 하나였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팬들과 달리 홍콩인들은 그를 가수로서 더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홍콩의 30대들은 정말 매일같이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들이죠.

레슬리와 알란탐(담영린)이 80년대 홍콩 가요계를 양분했던 라이벌이었다는 것은 유명합니다. 85년 이후 이 둘은 피할 수 없는 살인적인 인기 경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이 두 가수들의 팬들 사이에 잦은 다툼이 일어나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었죠. 사실 본인들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까지는 아니었어도 서로 존중하는 동료 사이였고 별 문제가 없었지만 팬들의 신경전이 워낙 치열하고 언론에서 늘 둘을 비교하면서 이슈를 만들어댔으니 맘이 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둘은 음악 스타일이나 이미지 면에서 상당히 대조적이었는데, 알란탐이 보다 전통적인 홍콩 대중 가요 스타일과 일본 엔카 타입의 노래들을 주로 불렀으며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확실한 가창 실력으로 가요계의 킹으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었던 반면, 레슬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과 이미지로 홍콩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경우였습니다. 이미지 면에서도 알란탐은 모범/단정이었던 반면 레슬리는 좀 더 Edgy했죠. 지금봐도 헉, 하고 놀랄 전위적인 디자인의 옷들도 많이 입었고,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때에 타이트한 티셔츠에 진을 입고 무대에 올라서 센슈얼하고 열정적인 춤과 노래를 선보인 것도 그였으니까요. 목소리 자체만 봐도 레슬리의 목소리는 감정이 넘쳐 흐르는 보이스인 반면, 알란탐의 목소리는 안정적이고 컨트롤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먼저 대중적으로 폭넓은 인기를 얻은 것은 알란탐이었습니다만, 87년에 '무심수면'의 엄청난 대히트로 그 해 가요대상을 레슬리가 수상함으로써 드디어 알란탐과 함께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8년과 89년에는 둘 중 누가 더 앞서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이 치열한 인기 경쟁이 지속되었죠. 이 둘에 매염방까지 더해 이른바 무적 3인방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거의 신의 위치로 승격될 지경이었다죠. 하지만, 레슬리와 알란탐 팬들의 불화는 점점 심해져만 갔고 결국 더 이상 가만 놔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알란탐은 앞으로 가요계에서 주는 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레슬리는 한 발 더 나아가 90년 가요계에서 은퇴를 합니다. 레슬리가 가요계에서 은퇴를 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얘기됩니다. 원래 데뷔 10여년 후에 정상에서 은퇴할 생각도 있었고, 야마구치 모모에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었고, 아이돌 스타로서 언제까지나 갈 수 없기 때문에 결단을 내렸다고도 하고, 연예계에 회의를 느꼈다고도 하고, 알란탐 팬들로부터 괴롭힘을 하도 받은데다 제사용 물건 같은 것까지 보내면서 간접 위협을 하자 생명의 위昰?느꼈다는 얘기도 있고, 홍콩 조직폭력세력인 삼합회가 뒤에 있었다는 얘기도 있죠.

어쨌든 레슬리가 33회의 고별콘서트를 끝으로 가요계를 은퇴하면서 레슬리와 알란탐 두 사람의 경쟁관계에는 종지부가 찍어졌습니다. 레슬리는 고별콘서트에서 평안하고 진심어린 표정으로 "음악으로서 좋은 친구였던 알란탐"의 앞날에 축복을 빌어줬었죠. 하지만 워낙 대단했던 라이벌 관계라 그 뒤에도 사람들은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기회가 있기만 하면 끊임없이 입방아를 찧어댔습니다. 그런데 알란탐도 은퇴를 했고, 90년대에는 4대천왕이 득세하고 다른 가수들도 많이 나오고, 레슬리는 영화배우 일에 전념하고 하니 별로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레슬리가 95년에 다시 앨범을 내기 시작하고 98년에는 기존 락레코드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알란탐이 있는 유니버설로 소속을 옮기면서 둘이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도 둘이 한 레코드사에 있으니 언론들은 뭔가 얘깃거리를 만들어내려고 잠시 난리였지만, 홍콩 연예계의 교장선생님과 큰형(꺼거)으로서 왕성한 활동 중이셨던 이 계속되는 전설 두 분은 홍콩 언론들이 입방아 찧을 여지를 남기지 않고 대신 사이좋게 '환영(幻影) +무지련(霧之戀)' (1999) MV를 찍었습니다.

비록 예전에 지존무상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나 알란탐에 대해 큰 호감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만, 이 '환영+무지련' 뮤직비디오는 왠지 맘에 드는 뮤직비디오 중 하나입니다. 앞 부분에 두 분의 전설적인 80년대 활약상을 흑백 스냅 사진들로 볼 때는 왠지 모르게 뭉클합니다. 또 그 뒤 10년 후 여전히 아름답게 건재하고 있는 두 분을 보는 것도 흐뭇하고, 보다 깊이있어진 목소리와 연륜이 가져다준 성숙한 분위기도 좋구요. 그리고 레슬리팬인 제 입장에서는 9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스타일리시한 트렌드세터인 레슬리 & 자연스럽고 편안한 레슬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아요. 96-97년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해피투게더 찍느라 완전 야위고 조금 지치신 것 같았는데, 98-99년에는 다시 생기있고 훨씬 앳된 모습으로 돌아오시는 바람에 이 때 찍은 다른 뮤직비디오들 'Love Like Magic', 'My God', 'Everybody', '저사년래' 등을 보나 이 '환영+무지련' 뮤직비디오를 보나 가끔 90년 은퇴 이전의 모습들과 구분이 안갈 때도 있어요. (예전에 포스팅한 '동보과동'은 이보다 한 1~2년쯤 후지만 역시 Leslie와 Alan을 한 자리에서 함께 볼 수 있는 멋진 무대죠!)


아무튼, 예전부터 포스팅하려고 했던 이 뮤직비디오를 드디어 오늘 포스팅하는군요. 환영과 무지련, 두 노래 다 원래 알란탐이 80년대에 발표했던 곡들입니다. 알란탐의 15주년 기념으로 그의 히트곡들을 리메이크한 앨범 <譚詠麟誰可改變十五周年紀念集>에 레슬리가 참여해 준 형식으로 제작된 거지요. 즐감하세요~

Leslie & Alan: 환영+무지련 MV


덧글

  • Koolkat 2006/09/23 21:04 # 답글

    이 PV참 좋네요. 레슬리도 좋고 알란형은 예전에 김완선씨와 듀엣곡때문에 꽤 좋아했던 추억도 있고요. 근데 믿에 계속 자막 깔리는 게 어쩐지 아쉽네요. 약간 노래방 분위기가 난달까요...
  • 난아 2006/09/25 14:15 # 답글

    홍콩에서 나오는 뮤비들은 다 저렇게 첨부터 자막이 나오더라구요. 가라오케 버전으루. TT 전 한자 보면서 가사 내용을 알 수 있어서 사실 나름 좋아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가끔 자막 없이 보고 싶을 때도 있죠...
  • 비에로 2006/09/25 20:33 # 답글

    알란과 레슬리가 같은 세대지만 이상하게 저한테는 알란이 좀더 윗세대라는 느낌이 들어요. 음악보다는 영화에 더 몰입해서 그런지 스크린에서 일찍 사라진 알란은 아저씨라는 느낌이 든다는... 특히 얼마 전에 [용의가족]을 보다가 80년대 아저씨 패션을 한 모습은 보고는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최고의 스타도 시간의 흐름은 못 이기는구나.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면... 마음은 여전히 예전같은데, 스타와 함께 나도 늙어버려구나. 아직도 누구를 우상으로 섬긴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주기나 할까? 비웃을까? 하는 걱정도 생길 나이가 되어버리고....레슬리 때문에 난아님 블로그를 알았지만 요샌 경제 관련글이 더 흥미있네요. ^^ 한 주 멋지게 시작하시길....
  • 난아 2006/09/26 04:20 # 답글

    알란탐이 레슬리보다 6살 더 위긴 하지요. 얼마전에 보니 과거 홍콩 스타들 중 가장 빨리 늙은 스타 중 하나로도 꼽혔던 것 같은데, 확실히 알란탐은 동안은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레슬리는 2000년대 초까지 영화/음악 둘 다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영화제 노미네이션도 되고 앨범 탑도 여러번 차지하고 8개월 동안 콘서트까지 했던 반면, 알란탐은 앨범을 계속 내긴 했어도 말씀하신대로 영화는 일찍 접었고 가요계에서도 어른 위치로 이미 일찌감치 자리를 굳혔으니까요, 확실히 옛날 사람으로 느껴지네요. 저도 레슬리 때문에 알란탐의 최근 근황을 알게 되었죠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듯 해요. 하지만 전 레슬리가 조용필 이선희와 같은 세대라고 할 때 더 허걱~한답니다.^^
  • marlowe 2006/09/26 14:21 # 답글

    알란 탐이 제작, 연출 쪽으로 일찍 손을 댄 것도 영향을 미친 듯 합니다.
    (홍금보와 성룡의 관계라고나 할까....)
    어떤 의미에서 알란-레슬리는 행운아라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으니까요.
    레슬리 은퇴 이후, 4대천왕의 시대부터는 이런 대결 구도가 사라져서 재미가 떨어졌어요.
  • marlowe 2006/09/26 16:59 # 답글

    이건 좀 다른 얘기인 데, 원로 태권도인 이준구씨가 자신은 이소룡이 그의 등장으로 인기가 급락한 다른 홍콩 스타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하더군요. 그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남자의 질투는 여자의 그것보다도 무섭습니다.
  • 난아 2006/09/30 08:46 # 답글

    80년대 후반에 어떤 테니스 스타가 테러당한 것 때문에 레슬리도 인기와 명성이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 가치가 있나라는 회의를 느꼈다는 얘기를 했었죠.

    이소룡의 마지막도 아직까지 이해가 안가요. 의문스럽게 사라진 스타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미스테리들이 밝혀질 날들이 언젠가 있을지...
  • 2010/03/30 02:0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 2016/05/23 01:14 # 삭제 답글

    노래듣다가 오랜만에 뮤비 칮아보게 되었네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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