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로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비평가상을 수상하던 순간, 그 누구보다도 어린아이처럼 기쁨을 감추지 않던 레슬리. 레슬리의 일생에서 가장 기뻤던 때라고 늘 회고하던 바로 그 순간... 사실 이 때의 레슬리를 보다 보면 85-88년 즈음의 신나서 방방 뛰어다니는 레슬리를 보는 것 이상으로 흐뭇하고 뭉클한 감동마저 받게 되곤 한다. 그래도 93년 칸느영화제를 생각하면 기쁨과 아쉬움이 늘 교차한다. 그의 연기를 생각하면 당연히 남우주연상도 레슬리에게 갔어야겠지만, 영화 쪽에서 늘 상복이 별로 없었던 레슬리는 겨우 한 표 차이로 칸느에서의 남우주연상을 타지 못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레슬리가 서구에 너무 안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패왕별희' 때만 해도 공리가 더 널리 알려져 있는 바람에 미디어에서는 공리가 왔다고 시끌벅썩이었으니까.


칸느에서의 첸카이거와 레슬리 인터뷰 중 짤막한 한토막을 보자. 새초롬하고 우아하게 첸카이거 감독 옆에서 표정관리하고 있는 레슬리. 그런 레슬리를 가리키며 첸카이거 감독에게 프랑스 기자가 "이 대단하고 놀라운 배우를 어떻게 '발견(discover)'했느냐"는 질문을 한다. 빙그레 웃으면서 첸카이거 감독이 "2년전에 만났는데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의 재능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정말 대단하다. 여러분도 다 보셨지 않느냐."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다시 레슬리에게 질문을 한다. "그런데, 당신은 원래 전문 배우(professional actor)인가요 아니면 이번 영화로 데뷔한 신인 배우인가요?"
이 때가 이미 93년, "열화청춘", "영웅본색2", "연지구"로 최우수남우주연상 후보에 수차례 올랐었고, "아비정전"으로 홍콩금상장 최우수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던 때..... 레슬리는 아무렇지 않게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저는 10여년전쯤부터 원래 홍콩에서 대중가수였죠. 이제는 가수를 그만두고 영화배우로서 전념하고 있어요." 참 Modest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서구인들은 이 영화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이 중국인 남자 배우에게 덥석 칸느의 꽃 중 하나인 남우주연상을 안겨줄 만큼 일본을 제외한 동양에 대한 comfort 레벨이 높지 못했다.

그나마 이 칸느에서의 영광의 순간, 그리고 미국 골든글러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의 수상은 '패왕별희'가 겪어야했던 숱한 수난을 그나마 좀 덜어주긴 했다. 문화대혁명을 다뤘기 때문에 중국본토 상영이 금지되었었고, 첸카이거가 본토 출신이라 대만에서도 상영이 금지되었고, 또 홍콩에서는 레슬리만 홍콩 배우라고 이 영화를 외국영화로 분류함으로써 홍콩금상장에서 제외시켰으니까 - 아니었다면 당연히 홍콩금상장과 대만금마장 남우주연상의 영광 역시 레슬리의 차지였을 것이다. 칸느에서는 아직 낯선 중국배우라서 그만큼의 대우를 못 받고 (이 이후 칸느는 점점 중국을 주목하기 시작해서 장이모와 왕가위 감독의 영화 및 출연배우들이 줄줄이 상을 받았다), 막상 중국에서는 중국본토, 홍콩, 대만 삼중국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서 영화와 배우를 평가하는데 예술적 가치보다 정치적 가치에 더 신경을 쓰고. 그나마 레슬리가 정당하게 대우를 받았던 곳은 '언제나 그랬듯이' 사실 일본 뿐이었다. 그 해 동경영화제에서는 레슬리에게 일본비평가협회가 뽑은 외국어영화 부문 최우수남우주연상이 돌아갔다.

이 이후 칸느에서 첸카이거의 "풍월"과 왕가위의 "해피투게더"로 다시 한번 레슬리의 이름이 나오게 되지만, "풍월"은 타임지가 뽑은 그 해 최고의 영화로 뽑힌 반면 칸느에서는 냉대를 받았고, "해피투게더"는 레슬리가 데이가 되어 첸카이거를 빛내준것처럼 그가 아니면 누구도 연기할 수 없는 보영이 되어서 감독인 왕가위를 빛내주었을 뿐이었다. "풍월"로 대만금마장 남우주연상 후보에, "색정남녀"로 홍콩금상장 남우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해피투게더"로 대만금마장과 홍콩금상장 남우주연상 후보에 모두 올랐었지만, 모두 노미네이션에 그쳤다. 세 영화 다 영화 소재상의 문제가 가장 컸다. 연기도 참 잘하지만 그만큼 상복도 참 많은 양조위나 장만옥과 비교해볼 때 이건 정말 레슬리의 비운이라고 할 수 밖에... 아마도 가장 아쉬운 것은 "해피투게더"일 것이다. 모두가 이야기했듯 아무도 이 영화에서 레슬리의 Performance가 Tony보다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지만 - 그리고 레슬리가 없는 이 영화는 아마 이 영화가 아니었겠지만 - Tony는 "연기"였고 레슬리는 "연기"가 아니었다고 (또는 Tony보다 더 감정이입이 쉬운 포지션에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 Tony의 손을 들어준 주요이유였으니까 - 이 논리를 적용해보건데, Straight들의 이성애 연기 역시 참 쉬울 것 같은데 왜 이성애 로맨스 연기에 상들을 주는 거지?

레슬리가 워낙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고 그러니까 이런 상들을 받든 안 받든 신경쓸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사실 완벽주의자였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레슬리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그리고 성취를 보여준 만큼 자신을 진정한 배우로서 인정해주는데 인색한 세상에 실망을 하고 상처도 받았다고 솔직히 이야기한다. 티를 내지 않고 계속 더 앞으로 나아가는데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천상 마음이 여리고 순수했던 그는 속으로 멍이 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레슬리가 정말 원한 것은 누군가와 비교되고 누구보다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unique함 그대로를 인정받는 것이었고, 잘생긴 외모나 섹시한 매력이나 앳되고 귀여움 때문에 사랑받기보다는 '자신이 노력해서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인정받는 것이었다.
오늘 이번 해에 차이니즈 팝 컬쳐와 문학, 역사 쪽으로 수업을 청강이라도 하고 싶어서 (결국 시간표가 안 맞아서 못하게 될 듯 하지만) syllabus들을 보다보니 과목들마다 스크리닝하는 필름들의 리스트에 그의 작품들이 정말 거의 매시간 나온다. "연지구", "영웅본색", "아비정전", "패왕별희", "야반가성", "해피투게더",... 역사를 논하든 예술을 논하든 팝 컬쳐를 논하든, 이 수업들을 듣는 외국 학생들이나 화교학생들에게는 거의 레슬리가 20세기 중국의 역사와 현대 문화의 '대표 이미지'가 되겠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교수가 추가로 추천 영화 리스트를 만든 데에 조차 하도 그의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네... 수업시간에도 많이 봤겠지만, 할 수 없군요. 또 Leslie Cheung입니다"라고 syllabus에 커멘트를 쓸 지경이었으니까.
뭐, 이제는 그가 영화와 음악계에서 이룬 업적에 대해 대부분 인정을 하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될 지경에 이르렀지만...그의 생전엔, 그가 그렇게 원했던 사랑과 진정한 아낌과 인정보다는 쓸데없는 호기심과 관심과 질시가 더 많았다. 20년이나 넘게 늘 항상 보이는 스타였으니까 언제나 곁에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항상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굳이 박수를 안 쳐줘도 괜찮을 줄 알았다. 어제 어디에선가 "죽은 사람에게 바치는 화환보다 산 사람에게 주는 장미 한 송이가 더 가치있다"라는 인용구를 봤는데, 그래...정말 그렇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그가 살아 있을 때 그에게 장미 한 송이를 주는데 그렇게 인색했을까. 그는 꽃다발도 아닌 그 장미 한송이에조차 어린아이같이 기뻐할 사람이었는데...
덧글
wannafly님/ 맞아요TT. 레슬리 아마 83년 가수 시상식 때 혼자 우셨던 이후로 그 때 가장 서러우셨을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