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스타벅스를 다시 살리기 위해 하워드 슐츠가 돌아왔다.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매장당 매출이 감소하고 있고 예전같은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스타벅스를 다시 강하게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노라고 선포했다.
아닌게 아니라 스타벅스는 이미 미국 내에서는 많은 비슷한 경쟁자들(Coffee Bean & Tea Leafs, Peet's Coffee 등)의 도전을 받고 있고, 이런 프랜차이즈들 뿐 아니라 로컬 커피 전문점, 티(tea) 전문점, 핫 초콜렛 전문점, 디저트 전문점, Au Bon Pain과 같은 베이커리 까페, 던킨 도너츠나 크리스피 크림 같은 도너츠 전문점, 그리고 맥도널드의 맥 카페처럼 패스트푸드점 등 수도 없이 많은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을 도처에서 받고 있다. 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턴, 뉴욕 등에 살거나 머무르면서 각 도시에서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했었지만 10여년전과 달리 최근 몇 년 사이 대부분의 점포에서 마주친 것은 고객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직원들, 다른 데에 비해 그다지 깨끗하거나 쾌적해보이지 않는 테이블과 의자들, 주문할 때마다 기다려야 하는 긴 줄, 늘 모자라는 테이블 등이었다. 스타벅스를 애용하는 고객에 속하는 나조차도 이럴진대 하물며 이 브랜드를 곱게 보지 않는 고객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야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이 수많은 다른 경쟁자들은 스타벅스에 비해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다. 스타벅스야 요새는 전세계 어디를 가나 다 있고 미국 도시에는 한 도시에도 몇 블럭 가다 하나씩 있을 정도인데다 매장 오픈 시간도 다른 데에 비해 긴 편이고 잘 아는 메뉴가 있으니 늘 편안하고 만만하다. 아마 나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고객들이 이런 이유로 아직도 스타벅스를 버리지는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게 애초에 스타벅스의 마케팅 포인트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는 곧 스타벅스의 주요 고객군과 가치제안에 상당한 변질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나도 더 이상 이 브랜드에 그다지 충성도가 높지 않으니 언제고 조금만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난다면 곧 바꿀 의향이 있다.
그런데 스타벅스가 진짜 걱정해야할 문제는 단지 처음에 지적했던 서비스의 질 저하와 매장관리 미흡 차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요새 들기 시작한다. 스타벅스의 경쟁자들을 보면 디저트 전문점, 베이커리 까페, 도너츠 전문점, 패스트 푸드점 등에서 파는 커피는 절대 주메뉴가 아니고 뭔가 주 먹을거리를 파는 데에 더해서 파는 음료의 개념이라 별로 걱정이 안되는 데에다 똑같은 커피라도 스타벅스 커피와 질적 차이가 확연하다는 생각들이 있으니, 매출은 조금 좀먹는게 신경쓰이긴 해도 그렇게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새 우리 동네에서 티 전문점과 핫초콜렛 전문점의 폭발적인 인기를 보고 있자면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티 전문점의 인기는 당연히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 열풍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여기에 동양적인 것들이 신비로워보여서 인기를 끄는 이유도 물론 곁들여진다). 이 웰빙 열풍은 사실 스타벅스에 크나큰 타격이다. 싸이월드에도 한참 돌아다닌 스타벅스 커피 칼로리표를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 커피에 엄청난 칼로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떨었던가. 미국에서도 허구한 날 잡지에 스타벅스 까페 라떼 하나 마시면 200kcal이고 에그노그 라떼를 마시면 400kcal도 넘는다며 겁을 준다. 게다가 카페인이 나쁘니 좋으니 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사이에 카페인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은 이미 널리 퍼졌다. 카페인과 엄청난 칼로리를 섭취하느라 그 비싼 돈을 내다니 (미국에서는 "Latte Effect"라고 매일 까페라떼 사먹는 돈만 모아도 몇천만원은 모을 수 있다는 계산결과가 한 때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웰빙주의자들의 눈길은 겨우 0-3kcal에 불과한데다 카페인도 덜 들어있고 몸에 좋은 성분이 많은데다 향긋한 아로마 요법 효과까지 있다는 차(tea)로 이미 돌아갔다. 덕분에 요새 곳곳에 있는 티 까페들은 성업 중이다.
이 웰빙 열풍 와중에 핫초콜렛 전문점의 인기는 조금 패러독스이다. 사람들은 와서 그냥 초콜렛 자체를 녹인 것 같은 아주 진한 핫 초콜렛을 맛있게 먹고 간다. 이 핫초콜렛을 먹겠다고 멀리까지 와서 긴 줄을 서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들 중에는 물론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과 아예 성격이 다른 고객군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티 까페를 즐겨 가는 사람들 중에 이 핫초콜렛집을 사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 먹을 거면 철저히 건강을 생각하는 쪽으로 가고 이왕 즐기기로 할 거면 진짜 제대로 된 것을 먹지 미적지근하게 이도 저도 아닌 걸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인 것이다.
오늘 스타벅스에 가보니 웰빙 열풍을 엄청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듯 'Skinny Lattes' 메뉴란이 따로 크게 있었다. 이 메뉴의 라떼들은 무지방(non-fat) 우유를 사용하고 설탕 대신 다른 감미료를 사용한 (sugar-free) 시럽을 사용하며 휘핑크림을 얹지 않는다. 예전에도 이렇게 따로 주문할 수는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skinny"라고 하면 이 옵션이 세트로 주문이 된다 (그리고 사실 예전에는 sugar-free 시럽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원하면 디카페인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Tall size로 주문하면 90kcal라고 친절히도 써 놨다. 그 옆의 블랙보드에는 "우유에 관한 사실 하나"라는 제목 하에 우유에 칼슘과 단백질이 얼마나 많은지를 강조해놓는 짧은 글을 써놨다. 스타벅스 고객들이 얼마나 웰빙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지 스타벅스도 이런 트렌드를 얼마나 신경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Skinny Latte 옵션으로 시켜서 먹으면서 뭔가 커피의 '진짜'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커피지만 카페인이 없고 우유지만 지방이 하나도 없고 시럽은 인공 감미료로 만들었다...그렇게 해서 나온 맛은 인공향료로 맛을 낸 딸기우유를 딸기가 진짜 든 우유라고 생각하며 먹어야 하는 기분이랄까. 물론 그게 싫었으면 다 넣어서 시켰으면 됐겠지만 그러기엔 죄책감이 들고. 그러니까 이럴거면 차라리 차를 마셨으면, 아니면 아예 우리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진짜 맛있는 (설탕, 지방, 카페인 다 듬뿍 든!) 핫초콜렛(원하면 커피도 살짝 넣을 수 있다)을 마셨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이 휴일이라 두 가게들이 일찍 열지 않아서 스타벅스를 갔기에 이렇게 된 것이었지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스타벅스에서 이런 뜨뜻미지근한 타협안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비슷한 현상이 요새 주류 부문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요새 사람들은 건강을 생각하고 가볍게 마시려면 아예 와인을 마시고 화끈하게 마실 거면 소주로 가지 그 중간은 잘 선택하지 않아서 백세주 등의 판매가 예전보다 줄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로 뒷받침되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얘기는 된다. 'Being stuck in the middle'의 위험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례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결론은, 스타벅스가 Skinny latte 메뉴까지 만들어서 내가 갈 때 그런 메뉴를 선택할 폭을 넓게 해준 것은 고맙지만, 웰빙 열풍 때문에 스타벅스로부터 발길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 이 Skinny latte를 보고 다시 스타벅스로 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칼로리나 설탕이 있는지 없는지 같은 것에 신경 안 썼던 사람들한테는 당연히 영향이 없을 것이고. 스타벅스를 여전히 오지만 non-fat, sugar-free syrup, no-whip을 주문하던 사람들한테 그냥 "skinny요"라고 말할 수 있는 편리함 정도를 줬다고나 할까. 이 사람들은 뭐 원래 오던 사람들이니 역시 매출 신장엔 별 영향이 없을 것이고. 스타벅스야 '커피를 파는 회사'로 완전히 각인이 되어 있으니, 역시, 스타벅스가 요새의 웰빙 열풍을 감당해 내기에는 주 아이템 자체에서 오는 한계가 어느 정도 있는 건가 (반면, 비슷한 커피 프랜차이즈인 커피빈은 Coffee Bean & Tea Leafs로 애초에 차 쪽에도 상당히 주력해서 차를 마시러 가기에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빈이 현재의 웰빙 트렌드에서는 조금 더 나은 포지셔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 스타벅스에게 기회는 이런 트렌드가 만연하고 있는 미국보다 해외에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앞으로는 중국,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등의 개발도상국들에서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는 것 차제가 미국 문화를 누리고 중산층 라이프 스타일의 여유를 즐긴다는 의미로 훨씬 더 중요할 테니까. 정작 프랑스에서는 소비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난리가 나고 있는 와인처럼, 스타벅스 커피도 마찬가지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로 가서 '여유있는 라이프 스타일의 상징'으로 가는 길이 살 길이 될 것이다. 미국 내 매장당 매출이 떨어졌다고 다시 이걸 높여보려고 노력한다면 (물론 서비스 질과 매장관리의 질은 제발 높여주셔야겠지만...!), 안타깝지만 노력에 비해 회사의 매출에는 별 큰 효과가 없을 것 같다.
한가지 사족을 더 붙인다면, 이런 마케팅 전략을 써서 해외에 진출하고 매출을 늘려야할 스타벅스가 우리나라 스타벅스 커피 가격을 미국 가격 수준으로 낮출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이미 국내 업체들이 더 저가로 포지셔닝해있고 한국 시장에서 스타벅스가 타겟으로 하는 고객층은 저가로 공략할 필요가 없으니까 뭐하러 매출과 이익률에 타격이 가는 일을 할까. 스타벅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지만 대부분이 스타벅스 고객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얘기이므로 회사로서는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커피 가격을 조금 낮춘다고 고객이 크게 늘어날것도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첫 pricing을 높게 해서도 크게 성공했으니 이걸 낮추는 건 브랜드 포지셔닝에는 부정적인 역할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홍콩과 도쿄는 서울보다는 좀 더 낮게 시작했는데... 아쉽다 TT).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물가에 비해 스타벅스가 무척 비싸지만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물가 수준에 비해 스타벅스 커피 가격은 어마어마한 편이다. 하지만 회사로서는 전혀 상관없다 - 뉴욕이나 홍콩 가격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하여...아쉽게도 한국 스타벅스는 계속 비쌀 것 같다.
PS. 그런 와중에 스타벅스가 시범적으로 미국은 커피값을 더 내렸다는 기사가 다음에 떴네요.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와의 가격 차이가 더 심해지겠죠. 미국에서도 사실 커피값을 내리는 것이 스타벅스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해결책은 아닌 거 같은데...쩝.
- 2008/01/22 04:01
- nanahome.egloos.com/1711476
- 덧글수 : 3
덧글
커피빈도 그렇고 점포들이 커지다 보니 (예전에도 없었지만) 편안한 소파가 많이 없고 층층이 사람들이 꽉 들어차면 커피 사들고 서점에라도 가있고 싶어집니다. 덕분에 요샌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피해 Holly(?)나 Angel in us 이런곳을 찾아가지요
인도네시아에서 자바 원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다가
한국에 오니 커피가 싱겁습니다 ㅜ.ㅡ
전 스키니 라떼보다 헤비 라떼 이런걸 마시고 싶습니다 ^^;
한국 커피가격을 보면 한국이 점점 스타벅스의 '봉'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요?